전술 이야기

로우블록·미드블록·하이블록

수비는 어디서 기다릴 것인가

로우블록·미드블록·하이블록 대표 그림

자! 전술 이야기 여섯 번째. 지난 편 게겐프레싱이 공을 잃은 직후 '바로 다시 뺏으러 가는' 이야기였다면, 오늘은 그 반대다. 상대가 공을 잡고 차분하게 공격을 시작했을 때, 우리는 어디에서 기다릴 것인가.

이걸 '수비 블록'이라고 부른다. 수비수와 미드필더가 두 줄로 벽을 세우는데, 그 벽을 경기장 어느 높이에 세우느냐에 따라 로우블록, 미드블록, 하이블록으로 나뉜다. 레스고~

1. 블록은 높이의 문제다

세 그림을 나란히 보자. 우리 골문이 아래쪽이고, 상대는 위에서 아래로 공격해 온다. 빨간 두 줄이 우리 수비 블록이다.

① 로우블록

D
D
D
D
M
M
M
M
F
F

자기 박스 앞까지 내려와 두 줄로 선다. 뒷공간이 없다.

② 미드블록

D
D
D
D
M
M
M
M
F
F

하프라인 근처에서 기다리다 상대가 넘어오면 압박을 시작한다.

③ 하이블록

D
D
D
D
M
M
M
M
F
F

상대 진영에서부터 막는다. 뒤에 넓은 공간이 남는다.

세 블록 비교
블록어디서 막나좋은 점나쁜 점
로우블록우리 박스 앞뒷공간이 없어 침투를 거의 허용하지 않는다공을 뺏어도 상대 골문까지 멀다. 슈팅·크로스를 계속 맞는다
미드블록하프라인 근처수비 안정과 역습 기회의 균형애매하면 둘 다 놓친다. 라인 간격 조절이 어렵다
하이블록상대 진영공을 뺏으면 바로 골 찬스뒷공간이 넓다. 롱볼 한 방에 무너질 수 있다

2. 블록의 생명은 '간격'이다

높이만큼 중요한 게 하나 더 있다. 두 줄 사이의 간격, 그리고 옆 선수와의 간격이다. 두 줄 사이가 벌어지면 상대는 그 틈(라인 사이 공간)에서 공을 받아 돌아선다. 지난 편들에서 본 폴스나인이 내려와 공을 받는 곳, 하프 스페이스의 8번이 서는 곳이 바로 이 틈이다.

그래서 좋은 수비 팀은 블록이 통째로 움직인다. 공이 오른쪽으로 가면 열 명이 한 몸처럼 오른쪽으로 밀리고, 공이 뒤로 가면 다 같이 한 칸 올라선다. 정리하면 이렇다. 수비 블록은 '높이'로 성격이 정해지고 '간격'으로 실력이 갈린다.

3. 유명한 블록들

블록별 대표 사례
블록팀·감독기억할 장면
로우블록인테르 (무리뉴, 2009-10)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 바르셀로나 원정에서 10명으로 버티며 결승행, 그 시즌 트레블
미드블록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시메오네)촘촘한 4-4-2 두 줄로 바르셀로나·레알 마드리드 사이에서 라리가 우승(2013-14, 2020-21)
하이블록바이에른 뮌헨 (플리크, 2019-20)수비 라인을 하프라인 근처까지 끌어올리는 공격적인 수비로 트레블

세 팀 모두 우승했다. 즉 어느 블록이 정답이라는 건 없다. 내 선수들이 뭘 잘하는지, 상대가 누군지에 따라 고르는 거다. 같은 팀도 경기 중에 블록 높이를 바꾼다. 앞서고 있으면 내려앉고, 지고 있으면 올라간다.

4. 숫자로 보기: 걷어내기 숫자가 말해 주는 것

블록 높이를 직접 보여 주는 공개 지표는 드물다. 대신 힌트가 되는 숫자가 있다. 걷어내기(클리어링)다. 자기 박스 근처에서 오래 수비하는 팀일수록 공을 멀리 차 내는 장면이 많아진다. 분데스리가를 보자.

분데스리가 경기당 걷어내기 (2026-27시즌 7경기)

샬케
39.4회
파더보른
35.0회
우니온 베를린
34.4회
레버쿠젠
19.7회
바이에른
13.0회

출처: FotMob(Opta), 2026-27시즌 분데스리가 7경기 기준

걷어내기 1위 샬케는 점유율이 39.7%로 리그에서 두 번째로 낮다. 반대로 걷어내기 최하위 바이에른은 점유율 66.9%로 1위다. 바이에른은 걷어낼 일이 샬케의 3분의 1밖에 안 된다는 얘기다. 정리하면 이렇다. 걷어내기가 많다 = 자기 진영에서 오래 버텼다 = 낮은 블록에 가깝다. 프리미어리그도 비슷해서, 점유율 1위 맨시티가 걷어내기는 경기당 18.0회로 리그 최하위다.

그럼 낮은 블록 팀은 실점이 많을까? 꼭 그렇진 않다. 블록의 성패는 결국 상대에게 얼마나 '좋은 슈팅'을 허용했느냐로 갈린다. 그걸 보여 주는 게 기대실점(xGA)이다. 세리에A에서 유벤투스는 9경기 기대실점 5.4로 리그에서 가장 적은데, 점유율은 59.1%로 4위다. 공을 많이 가지면서도 내준 기회의 질은 가장 낮았다. 블록의 높이보다 블록의 촘촘함이 더 중요하다는 걸 보여 주는 숫자다.

5. 블록을 상대하는 법

로우블록은 공을 가진 팀의 최대 고민거리다. 공은 계속 가지고 있는데 들어갈 틈이 없다. 그래서 하프 스페이스로 파고들기, 한쪽에 사람을 몰아 놓고 반대로 전환하기, 중거리 슈팅으로 블록을 끌어내기 같은 해법이 나온다. 반대로 하이블록은 뒷공간을 노린 롱볼 한 방에 약하다. 이 공략법들은 상성 편 '로우블록을 여는 법'과 '하이프레스를 깨는 법'에서 하나씩 다룬다.

6. 정리

나의 최첨단 예민한 그 결론은 이렇다. 수비 블록은 '어디서 싸울지'를 먼저 정하는 일이고, 좋은 팀은 그 높이를 경기 상황에 따라 바꿀 줄 안다.

다음에 경기 볼 때 상대가 공을 잡았을 때 우리 팀 수비 두 줄이 경기장 어디에 서 있는지 한번 보자. 박스 앞이면 로우, 하프라인이면 미드, 상대 진영이면 하이. 그것만 봐도 그날 감독의 계획이 보인다ㅎㅎ

전술 이야기 시리즈
1편 폴스나인이란 무엇인가
2편 하프 스페이스와 5레인
3편 인버티드 풀백
4편 3-2-5 빌드업
5편 게겐프레싱과 하이프레스
6편 로우블록·미드블록·하이블록 (지금 이 글)
7편 전환(트랜지션) 이야기
8편 4-4-2: 가장 오래된 현대 포메이션 (다음 편)
9편 4-3-3: 점유의 기본형 (다음 편)
10편 4-2-3-1: 가장 흔한 포메이션 (다음 편)
개념 → 포메이션 → 상성 → 데이터 순서로 이어집니다. 지난 글은 전술 이야기에서 모아 보세요.

이상으로 전술 이야기 여섯 번째, 수비 블록 편을 마칩니다~~ 응원하는 팀은 어떤 블록을 주로 쓰는지 댓글로 알려 주세요. 다음 편은 블록과 압박 사이, 공수가 뒤바뀌는 몇 초의 이야기 전환(트랜지션)입니다.

참고 자료: 개념·역사 — 조나단 윌슨 《가장 완벽한 게임, 축구 전술의 역사》, 마이클 콕스 《The Mixer》, Total Football Analysis / 팀 지표 — FotMob(Opta 데이터), 2026-27시즌 10월 말 기준. 그림은 폴스나인에서 직접 그렸습니다.

© 2026 폴스나인(운영자). All rights reserved. 이 글의 문장·표·그림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 전재·재배포·변형 게시를 금합니다. 일부 인용은 출처(폴스나인, 글 주소)를 밝힌 경우에만 허용하며, 그 밖의 이용은 contact [at] fls9.kr로 허락을 받아 주세요. 사진과 구단 로고의 저작권은 각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댓글

  • 댓글을 불러오는 중…

링크·연락처·홍보 글은 자동으로 막히고, 운영 정책에 맞지 않는 댓글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