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술 이야기

게겐프레싱과 하이프레스

공을 잃은 다음 5초의 전쟁

게겐프레싱과 하이프레스 대표 그림

자! 전술 이야기 다섯 번째. 지금까지는 공을 가지고 있을 때 이야기만 했다. 폴스나인, 하프 스페이스, 인버티드 풀백, 3-2-5. 그런데 축구에서 공을 영원히 가지고 있는 팀은 없다. 그럼 공을 뺏긴 순간에는 뭘 해야 할까?

여기에 대해 "바로 다시 뺏으러 가라"고 답한 사람들이 있다. 오늘의 주제, 게겐프레싱과 하이프레스다. 레스고~

1. 두 단어부터 정리하자

비슷하지만 다른 두 압박
용어언제무엇을
게겐프레싱 (Gegenpressing)우리가 공을 뺏긴 직후물러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바로 다시 뺏으러 달려든다
하이프레스 (High press)상대가 뒤에서 빌드업할 때상대 진영 깊숙이 올라가 골키퍼·센터백부터 압박한다

'게겐(gegen)'은 독일어로 '맞서는, 반대로'라는 뜻이다. 상대의 역습(counter)에 거꾸로 압박으로 맞선다고 해서 영어로는 '카운터 프레싱'이라고도 부른다. 정리하면 이렇다. 하이프레스는 '상대 공을 처음부터 높은 곳에서 뺏는 것', 게겐프레싱은 '잃어버린 공을 몇 초 안에 되찾는 것'이다.

2. 그림으로 보는 게겐프레싱

공을 뺏긴 직후

상대
8
9
W
6
D
D

공을 뺏긴 자리(회색 '상대')로 가까운 4명이 동시에 달려든다. 상대는 고개를 들 틈이 없다.

핵심은 타이밍이다. 상대가 공을 뺏은 직후 1~2초는 가장 불안한 순간이다. 몸은 수비하던 자세 그대로고, 동료들은 아직 공격 위치로 퍼지지 못했다. 이때 근처에 있던 우리 선수 3~4명이 한꺼번에 달려들면 상대는 패스할 곳을 못 찾고 다시 공을 잃는다.

게다가 이렇게 다시 뺏은 공은 상대 골문 가까운 곳에서 생긴다. 상대 수비 대형은 이미 공격하러 올라가느라 흐트러져 있다. 그래서 위르겐 클롭은 "좋은 게겐프레싱 상황보다 나은 플레이메이커는 없다"는 취지의 말을 남겼다. 패스 한 방보다 압박 한 번이 더 좋은 찬스를 만든다는 뜻이다.

3. 역사: 독일에서 시작된 압박 혁명

압박 전술의 흐름
시기누가어떤 모습
1970년대리누스 미헬스(네덜란드)·발레리 로바노프스키(디나모 키예프)토털 풋볼과 집단 압박의 원형
1980년대 말아리고 사키 (AC 밀란)선수 간격을 좁혀 다 같이 밀고 올라가는 압박 수비
1990년대 말~랄프 랑닉 (독일)압박을 체계로 만든 이론가. 이후 레드불 계열 팀들의 철학이 됐다
2008~15년위르겐 클롭 (도르트문트)게겐프레싱으로 분데스리가 2연패(2010-11, 2011-12)
2008~12년펩 과르디올라 (바르셀로나)공을 잃으면 몇 초 안에 되찾는다는 규칙으로 유명. 흔히 '5초 규칙'으로 불린다
2015~24년위르겐 클롭 (리버풀)챔피언스리그(2018-19)와 프리미어리그(2019-20) 우승

재밌는 건 정반대 스타일로 알려진 두 감독이 같은 걸 중요하게 여겼다는 점이다. 점유율의 과르디올라도, 역습의 클롭도 '공을 잃은 직후'를 승부처로 봤다. 공을 오래 갖는 팀에게 게겐프레싱은 상대 역습을 원천 봉쇄하는 보험이고, 빠른 팀에게는 그 자체로 공격 수단이다.

4. 숫자로 보기: 압박은 생각보다 재기 어렵다

여기서 숫자에 대해 솔직한 이야기를 하나 하자. '태클이 많은 팀 = 압박 팀'일까? 그렇지 않다. 프리미어리그 2026-27시즌 8경기 기준으로 보면 이렇다.

경기당 태클 (프리미어리그)

크리스털 팰리스
20.8회
애스턴 빌라
19.0회
노팅엄
18.5회
맨시티
12.5회
아스널
11.6회

태클 1위 크리스털 팰리스는 점유율이 44.5%다. 공을 덜 가지니 수비할 일이 많고, 그래서 태클도 많은 거다. 반대로 맨시티(점유율 64.2%)와 아스널(60.8%)은 태클이 리그 최하위권이다. 수비할 시간 자체가 적기 때문이다. 정리하면 이렇다. 태클 숫자는 '압박 강도'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수비했나'에 더 가깝다.

그래서 분석가들은 PPDA(상대 패스 1개당 우리 수비 행동 수)라는 지표를 쓴다. 상대가 패스를 몇 개 하는 동안 우리가 몇 번 태클·가로채기를 했는지 보는 것이다. 숫자가 낮을수록 상대에게 패스할 틈을 안 줬다는 뜻, 즉 압박이 강하다는 뜻이다. 안타깝게도 공개 무료 자료에는 PPDA가 잘 나오지 않아서, 폴스나인은 앞으로 이 숫자를 직접 계산할 방법을 찾아볼 생각이다.

경기당 뛴 거리 (프리미어리그)

아스널
119.4km
풀럼
119.0km
브렌트퍼드
117.6km
맨시티
112.0km
리버풀
111.1km

출처: FotMob(Opta), 2026-27시즌 프리미어리그 8경기 기준. 뛴 거리는 팀 전체 합계

그래도 힌트가 되는 숫자는 있다. 뛴 거리 1위 아스널은 같은 기간 실점(경기당 0.6골)도, 기대실점(xGA 6.2)도 리그에서 가장 적다. 많이 뛰는 게 곧 압박은 아니지만, 공을 잃은 뒤 빨리 제자리로 돌아오거나 다시 달려드는 팀이 덜 실점한다는 건 숫자로도 보인다.

5. 약점: 체력과 뒷공간

첫째, 체력. 압박은 한 명만 하면 의미가 없다. 서너 명이 동시에, 그것도 90분 내내 해야 한다. 시즌 후반이나 일정이 빡빡한 시기에 압박 팀이 무너지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 이유다.

둘째, 뚫리면 크게 뚫린다. 압박하러 올라간 선수들 뒤에는 넓은 공간이 남는다. 상대가 압박을 한 번만 벗겨 내도 수비수 몇 명이 넓은 공간에서 역습을 상대해야 한다. 그래서 압박을 피하는 법, 즉 '하이프레스를 깨는 법'은 이 시리즈 상성 편에서 따로 다룬다.

6. 정리

나의 최첨단 예민한 그 결론은 이렇다. 현대 축구에서 '공을 잃은 다음 5초'는 공을 가진 90분만큼 중요하다.

다음에 경기 볼 때 공을 뺏긴 순간 우리 팀 선수들이 뒤로 물러나는지, 앞으로 달려드는지 한번 보자. 달려든다면 그 팀 감독은 오늘 이야기의 신봉자다ㅎㅎ

전술 이야기 시리즈
1편 폴스나인이란 무엇인가
2편 하프 스페이스와 5레인
3편 인버티드 풀백
4편 3-2-5 빌드업
5편 게겐프레싱과 하이프레스 (지금 이 글)
6편 로우블록·미드블록·하이블록
7편 전환(트랜지션) 이야기
8편 4-4-2: 가장 오래된 현대 포메이션 (다음 편)
9편 4-3-3: 점유의 기본형 (다음 편)
10편 4-2-3-1: 가장 흔한 포메이션 (다음 편)
개념 → 포메이션 → 상성 → 데이터 순서로 이어집니다. 지난 글은 전술 이야기에서 모아 보세요.

이상으로 전술 이야기 다섯 번째, 게겐프레싱과 하이프레스 편을 마칩니다~~ 압박이 가장 무서웠던 팀이 어디였는지 댓글로 남겨 주세요. 다음 편은 반대로 압박을 받는 쪽, 수비 블록 이야기 로우블록·미드블록·하이블록입니다.

참고 자료: 개념·역사 — Spielverlagerung, 마이클 콕스 《The Mixer》, 조나단 윌슨 《가장 완벽한 게임, 축구 전술의 역사》 / 팀 지표 — FotMob(Opta 데이터), 2026-27시즌 10월 말 기준. 그림은 폴스나인에서 직접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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